지난번 펠트커피를 다뤘을 때는 가게 주인, 혹은 창업을 앞둔 사람의 심정이었습니다. 이번엔 반대가 궁금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불편한데 왜 가는 걸까? 오로지 맛을 위해 복잡한 길을 지나,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걸까? 커피맛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일단 펠트커피는 그걸 충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비자는 나름대로 '의미부여'가 됐을 때 돈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펠트커피 매장 안 / 사진 : 경제전파사
의미부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 이외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물건을 샀을 때, 가족이 공감했던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점에선 '자기만족'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운 여름, 그 곳까지 찾아가는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알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내게 큰 만족을 준다면, 편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을 쓰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맛 그리고 의미부여(혹은 자기만족) 이미 이것만으로도 돈을 쓰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생긴다면? 갈 이유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단, 아직은 의미를 전달 받은 사람이 공감여부를 판단하기 전입니다.) 옆 사람에게 '거기 가 봤어?' 라는 말에 내포된, '거기 (내가 가 봤는데 힙한 그 곳) 가 봤어?', 혹은 '거기 (트렌드를 모르는 니가 절대 알 리 없는 그 곳) 가 봤어?' 라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저를 데리고 간 지인의 첫 마디는 "펠트커피, 알아요?"였습니다. 문득 내포된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어, 이제 열어보지 않을래? 네 마음?
만약 의미를 전달받은 사람이 공감이라도 한다면, 불편하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지인이 "펠트커피, 가 볼래요?"라고 물었을 때, 전 "그래"라고 답했습니다. 지인은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이런 공감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사실 그 크기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미를 주고 싶은 사람에겐 '과시욕'과 '좋은 것의 나눔'이라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두 마음의 크기를 정확하게 나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마음이 많을수록 공감의 숫자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한 사람 뿐이라도 마음은 뿌듯합니다.
그렇다면, 의미 전달이 SNS를 만난다면? 음식도 즐기지만 식당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품도 좋지만 그 제품이 전시된 곳과 가는 여정을 SNS에 알리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SNS가 없던 시기) 부모님 손을 잡고 간 맛집은 오래 기다려야 1시간 남짓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방송 전파를 타고, SNS로 퍼진 돈가스 맛집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게를 옮겼지만 텐트까지 쳐 하루를 꼬박 기다리는 일도 생겼습니다. 불편해도 돈을 쓰는 이유입니다.
공감해 준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판단을 내릴 때, 합리적 논리보다는 '가장 그럴 듯 하게' 여겨지는 결정을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발표한 '휴리스틱스 이론'(heuristics and bias)의 내용입니다. 저들이 말한 '가장 그럴 듯 하게'에 대해, '의미부여'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최근엔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고, 멀어서 가기 힘들더라도, 찾아서 가게 됐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공감을 한다면 불편해도 돈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달빛행진 / 경제전파사 종사자
경제기자를 업으로 삼다 친절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경제전파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경제를 찾아 따끈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번 펠트커피를 다뤘을 때는 가게 주인, 혹은 창업을 앞둔 사람의 심정이었습니다. 이번엔 반대가 궁금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불편한데 왜 가는 걸까? 오로지 맛을 위해 복잡한 길을 지나,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걸까? 커피맛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일단 펠트커피는 그걸 충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비자는 나름대로 '의미부여'가 됐을 때 돈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펠트커피 매장 안 / 사진 : 경제전파사
의미부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 이외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물건을 샀을 때, 가족이 공감했던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점에선 '자기만족'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운 여름, 그 곳까지 찾아가는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알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내게 큰 만족을 준다면, 편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을 쓰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맛 그리고 의미부여(혹은 자기만족) 이미 이것만으로도 돈을 쓰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생긴다면? 갈 이유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단, 아직은 의미를 전달 받은 사람이 공감여부를 판단하기 전입니다.) 옆 사람에게 '거기 가 봤어?' 라는 말에 내포된, '거기 (내가 가 봤는데 힙한 그 곳) 가 봤어?', 혹은 '거기 (트렌드를 모르는 니가 절대 알 리 없는 그 곳) 가 봤어?' 라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저를 데리고 간 지인의 첫 마디는 "펠트커피, 알아요?"였습니다. 문득 내포된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어, 이제 열어보지 않을래? 네 마음?
만약 의미를 전달받은 사람이 공감이라도 한다면, 불편하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지인이 "펠트커피, 가 볼래요?"라고 물었을 때, 전 "그래"라고 답했습니다. 지인은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이런 공감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사실 그 크기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미를 주고 싶은 사람에겐 '과시욕'과 '좋은 것의 나눔'이라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두 마음의 크기를 정확하게 나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마음이 많을수록 공감의 숫자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한 사람 뿐이라도 마음은 뿌듯합니다.
그렇다면, 의미 전달이 SNS를 만난다면? 음식도 즐기지만 식당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품도 좋지만 그 제품이 전시된 곳과 가는 여정을 SNS에 알리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SNS가 없던 시기) 부모님 손을 잡고 간 맛집은 오래 기다려야 1시간 남짓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방송 전파를 타고, SNS로 퍼진 돈가스 맛집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게를 옮겼지만 텐트까지 쳐 하루를 꼬박 기다리는 일도 생겼습니다. 불편해도 돈을 쓰는 이유입니다.
공감해 준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판단을 내릴 때, 합리적 논리보다는 '가장 그럴 듯 하게' 여겨지는 결정을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발표한 '휴리스틱스 이론'(heuristics and bias)의 내용입니다. 저들이 말한 '가장 그럴 듯 하게'에 대해, '의미부여'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최근엔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고, 멀어서 가기 힘들더라도, 찾아서 가게 됐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공감을 한다면 불편해도 돈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달빛행진 / 경제전파사 종사자
경제기자를 업으로 삼다 친절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경제전파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경제를 찾아 따끈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