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친구와 정말 오랜 만에 연락이 됐어요. 반가운 마음도 잠시, 녀석이 꺼낸 첫 마디
"나 회사 그만 뒀어"
"..."
"다닌 지 꽤 됐잖아?"
"10년?"
무심히 던지는 말에 전 무안했습니다. '살다보니' 핑계를 찾는 모습도 부끄러웠고요. 제 코도 석자지만, 뭐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주변에 좀 물어볼까?"
생각지도 못한 대답
"아냐, 나 일은 조금만 하고, 놀거야"
"일하면서 놀아... 뭐가 있어야 놀아도 놀지"
"일하면 못 놀아"
"야이..."
예전에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시험도, 연애도, 취업도...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혜원은 서울 생활을 잠시 멈추고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내려오자마자 눈밭을 헤쳐 배춧국을 끓여 먹고, 시들했던 혜원은 다시 피어났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혜원은 요리를 정말 잘합니다. 맛있게 먹기도 합니다. 직업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행복해 보입니다. 매일 바빠 보입니다. 제 친구가 꿈꾸는 삶일지도 모르겠네요. 제 친구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친구와 혜원이 겹칩니다.
둘의 엥겔지수는 어떨까요? (아마 둘은 관심도 없을 겁니다) 엄청 높지 않을까요? 버는 돈에 비해 식비 비중이 엄청 높을 테니까요. 학창시절 엥겔지수는 가난할수록 높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일까요? 현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니, 지난해 엥겔지수는 2000년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20년 만에 가장 높게 오른 셈이죠.
버는 돈도 살펴봤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선 지난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쉽게 말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1939조원으로 집계됐어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하네요. 그 해 가구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340만 1000원으로 0.5% 줄었고요. 한 마디로 우리나라 국민들 주머니에서 돈이 말랐다는 겁니다. 우리가 가난해진 걸까요?
엥겔지수가 오른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섞여 있을 겁니다. 집보다는 바깥에서, 혹은 배달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요. (사실 저희 집 밥솥은 벌써 1년 넘게 개점휴업 중) 먹방 등이 트렌드가 되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개인의 중요도가 커졌을 수도 있고요.
부모님 세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시대까지도 아닙니다. 높아진 엥겔지수 의미가 예전처럼 한없이 감추고 싶은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다만 또렷한 건, 내가 버는 돈이 먹는데 쓰는 돈 혹은 물가에 비하면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거죠.
직장을 박차고 나온 친구와 서울을 떠난 혜원의 깊은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 더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닐 수도 있고요. 그나마 위안을 삼고 싶은 건(드러내서는 안 되는) 엥겔지수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발적 최소만족을 행복으로 여기는 둘의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는 겁니다.
'파이팅이다'
달빛행진 / 경제전파사 종사자
경제기자를 업으로 삼다 친절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경제전파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경제를 찾아 따끈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좋아하는 친구와 정말 오랜 만에 연락이 됐어요. 반가운 마음도 잠시, 녀석이 꺼낸 첫 마디
"나 회사 그만 뒀어"
"..."
"다닌 지 꽤 됐잖아?"
"10년?"
무심히 던지는 말에 전 무안했습니다. '살다보니' 핑계를 찾는 모습도 부끄러웠고요. 제 코도 석자지만, 뭐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주변에 좀 물어볼까?"
생각지도 못한 대답
"아냐, 나 일은 조금만 하고, 놀거야"
"일하면서 놀아... 뭐가 있어야 놀아도 놀지"
"일하면 못 놀아"
"야이..."
예전에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시험도, 연애도, 취업도...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혜원은 서울 생활을 잠시 멈추고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내려오자마자 눈밭을 헤쳐 배춧국을 끓여 먹고, 시들했던 혜원은 다시 피어났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혜원은 요리를 정말 잘합니다. 맛있게 먹기도 합니다. 직업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행복해 보입니다. 매일 바빠 보입니다. 제 친구가 꿈꾸는 삶일지도 모르겠네요. 제 친구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친구와 혜원이 겹칩니다.
둘의 엥겔지수는 어떨까요? (아마 둘은 관심도 없을 겁니다) 엄청 높지 않을까요? 버는 돈에 비해 식비 비중이 엄청 높을 테니까요. 학창시절 엥겔지수는 가난할수록 높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일까요? 현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니, 지난해 엥겔지수는 2000년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20년 만에 가장 높게 오른 셈이죠.
버는 돈도 살펴봤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선 지난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쉽게 말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1939조원으로 집계됐어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하네요. 그 해 가구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340만 1000원으로 0.5% 줄었고요. 한 마디로 우리나라 국민들 주머니에서 돈이 말랐다는 겁니다. 우리가 가난해진 걸까요?
엥겔지수가 오른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섞여 있을 겁니다. 집보다는 바깥에서, 혹은 배달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요. (사실 저희 집 밥솥은 벌써 1년 넘게 개점휴업 중) 먹방 등이 트렌드가 되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개인의 중요도가 커졌을 수도 있고요.
부모님 세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시대까지도 아닙니다. 높아진 엥겔지수 의미가 예전처럼 한없이 감추고 싶은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다만 또렷한 건, 내가 버는 돈이 먹는데 쓰는 돈 혹은 물가에 비하면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거죠.
직장을 박차고 나온 친구와 서울을 떠난 혜원의 깊은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 더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닐 수도 있고요. 그나마 위안을 삼고 싶은 건(드러내서는 안 되는) 엥겔지수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발적 최소만족을 행복으로 여기는 둘의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는 겁니다.
'파이팅이다'
달빛행진 / 경제전파사 종사자
경제기자를 업으로 삼다 친절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경제전파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경제를 찾아 따끈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