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금가치 뚝뚝 떨어지는데 2%대 물가상승률이라니
- 집은 자산이었다가 생필품이었다가 ‘오락가락’
“집은 생필품”
최근 대선 후보로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집과 관련한 발언이 논란이 됐었죠.
집은 생필품이라 과도한 보유세를 매기면 정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는데, 집은 생필품이기도 하지만 다른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집은 ‘자산(asset)’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죠. 자산과 보유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와는 동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거론은 않겠습니다.
자산으로서의 집과 생필품으로서의 집, 이 복잡한 존재가 낳은 또 다른 논란 중 하나로 ‘물가’를 이야기 합니다.
미국 물가상승률 5%인데 우리나라는 2%?
물가는 참 재미없는 주제입니다. 발제를 하면 데스크(편집권이 있는 선임)에게 까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시경제에서 물가란 아주 중요한 변수인데도 불구하고 2% 안에서 소수점을 다투기에 눈길을 사로잡진 못합니다. 그런데 물가가 이슈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 국면입니다. 이 시기엔 장을 보는 주부 뿐만 아니라 자산가, 정책 입안자들까지 모두 사로잡습니다. 내 수중의 돈의 값어치가 뚝뚝 떨어지는데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요즘 언론에서는 경기는 좋지 않은데, 물가가 껑충껑충 뛰고 있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둔화 속 물가상승) 이야기가 슬슬 나옵니다. 그런데 솔직히 체감은 잘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7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6% 상승했다고 합니다. 4개월 연속 2%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겨우 2%대로 난리를 피울 일인가 싶지요.
그러면 비슷한 기간 미국을 한번 보겠습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6월에 지난해 6월 대비 5.4% 상승, 석 달 내내 4~5% 상승률을 기록 중입니다. 예적금 이자를 생각하면 5%대라는 숫자, 무섭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는 괜찮아서 '나쁘지 않아' 보이는 걸까요.
현실 반영 못하는 물가, 왜 그럴까
저는 돈의 가치를 뜻하는 물가 상승률이 현실을 너무나도 반영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산의 70%가 부동산인 한국에서 집값이 이렇게 천정부지로 뛰는데, 현금의 가치가 잘 지켜질 수 있을까요.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 호기심은 우연한 식사자리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물가지표를 모니터링하고 계신 분께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집을 사거나 임대로 거주하는 사람 입장에서 집을 상품이라고 보고, 물가 산정시 집값을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통계청이 우리나라 물가체계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비자물가(CPI)는 생계를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지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가 거주를 물가 산정에서 배제합니다. 집을 자본재(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토지 이외의 재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신 전·월세는 포함합니다.
제 생각도 한국은행 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월세와 자가는 주거에 대한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거든요.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포함하는 다른 나라들
다른 나라들도 주택을 거주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등이 자가주거비를 CPI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유럽중앙은행 등에서도 CPI의 신뢰성을 위해 자가주거비 포함 여부를 인플레이션 측정에서 중요한 이슈로 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노동기구(ILO)의 매뉴얼은 국가 간 비교를 위해 투자목적일 경우에도 CPI에 포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있습니다. 자가거주와 전·월세를 합하면 460개 품목 가운데 주거의 가중치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집니다. 사실상 주거비에 따라 물가지수가 결정된다는 통계기술상의 문제가 있긴 합니다.
통계청이 자가거주를 월세비용으로 환산, 자가주거가 포함된 CPI를 보조지표로 내놓긴 합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월세의 비중이 적어 월세로 전환한 자가거주지수의 변동폭이 오히려 CPI보다 적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물가 체계 논의할 시기
안 해서 그렇지 하면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되는 게 어딨나요. 실제 자가거주를 CPI에 포함하는 방식은 임대료 산정 방식 말고도 신규 주택가격(기존 주택은 매수·매도 화폐교환으로 제로섬이라 제외) 접근법이나 이자비용 등의 부대비용 접근 방식 등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실정에 적합한 자가주거비 반영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할 시기입니다. 최근 급등하는 주택가격만 봐도 그 필요성은 결코 적지 않아 보입니다. 물가지수만 믿지 마시고, 현금 가치를 지킬 방법이 무엇인지 잘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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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 경제일간지 기자
증권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현재는 경제일간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밥벌이 기자로, 밥벌이가 그렇듯 소모적 글쓰기를 합니다. '경제기자가 주목하는 보고서'를 주제로 글을 실어보겠습니다. '경제기자들은 왜 이 보고서를 주목하고 보도했을까'가 주제입니다. 즉 굳이 왜 이 주제가 부각됐는지, 루틴한 글쓰기에 사라진 맥락은 무엇이었는지, 나아가 이 보고서는 믿을 만한지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독자들에 무심했던 글쓰기를 했던 것의 고해성사인 셈입니다.
필명은 제 성격이 까칠하다며 취재원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기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별명같아 필명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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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생필품”
최근 대선 후보로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집과 관련한 발언이 논란이 됐었죠.
집은 생필품이라 과도한 보유세를 매기면 정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는데, 집은 생필품이기도 하지만 다른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집은 ‘자산(asset)’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죠. 자산과 보유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와는 동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거론은 않겠습니다.
자산으로서의 집과 생필품으로서의 집, 이 복잡한 존재가 낳은 또 다른 논란 중 하나로 ‘물가’를 이야기 합니다.
미국 물가상승률 5%인데 우리나라는 2%?
물가는 참 재미없는 주제입니다. 발제를 하면 데스크(편집권이 있는 선임)에게 까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시경제에서 물가란 아주 중요한 변수인데도 불구하고 2% 안에서 소수점을 다투기에 눈길을 사로잡진 못합니다. 그런데 물가가 이슈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 국면입니다. 이 시기엔 장을 보는 주부 뿐만 아니라 자산가, 정책 입안자들까지 모두 사로잡습니다. 내 수중의 돈의 값어치가 뚝뚝 떨어지는데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요즘 언론에서는 경기는 좋지 않은데, 물가가 껑충껑충 뛰고 있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둔화 속 물가상승) 이야기가 슬슬 나옵니다. 그런데 솔직히 체감은 잘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7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6% 상승했다고 합니다. 4개월 연속 2%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겨우 2%대로 난리를 피울 일인가 싶지요.
그러면 비슷한 기간 미국을 한번 보겠습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6월에 지난해 6월 대비 5.4% 상승, 석 달 내내 4~5% 상승률을 기록 중입니다. 예적금 이자를 생각하면 5%대라는 숫자, 무섭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는 괜찮아서 '나쁘지 않아' 보이는 걸까요.
현실 반영 못하는 물가, 왜 그럴까
저는 돈의 가치를 뜻하는 물가 상승률이 현실을 너무나도 반영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산의 70%가 부동산인 한국에서 집값이 이렇게 천정부지로 뛰는데, 현금의 가치가 잘 지켜질 수 있을까요.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 호기심은 우연한 식사자리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물가지표를 모니터링하고 계신 분께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집을 사거나 임대로 거주하는 사람 입장에서 집을 상품이라고 보고, 물가 산정시 집값을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통계청이 우리나라 물가체계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비자물가(CPI)는 생계를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지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가 거주를 물가 산정에서 배제합니다. 집을 자본재(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토지 이외의 재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신 전·월세는 포함합니다.
제 생각도 한국은행 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월세와 자가는 주거에 대한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거든요.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포함하는 다른 나라들
다른 나라들도 주택을 거주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등이 자가주거비를 CPI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유럽중앙은행 등에서도 CPI의 신뢰성을 위해 자가주거비 포함 여부를 인플레이션 측정에서 중요한 이슈로 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노동기구(ILO)의 매뉴얼은 국가 간 비교를 위해 투자목적일 경우에도 CPI에 포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있습니다. 자가거주와 전·월세를 합하면 460개 품목 가운데 주거의 가중치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집니다. 사실상 주거비에 따라 물가지수가 결정된다는 통계기술상의 문제가 있긴 합니다.
통계청이 자가거주를 월세비용으로 환산, 자가주거가 포함된 CPI를 보조지표로 내놓긴 합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월세의 비중이 적어 월세로 전환한 자가거주지수의 변동폭이 오히려 CPI보다 적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물가 체계 논의할 시기
안 해서 그렇지 하면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되는 게 어딨나요. 실제 자가거주를 CPI에 포함하는 방식은 임대료 산정 방식 말고도 신규 주택가격(기존 주택은 매수·매도 화폐교환으로 제로섬이라 제외) 접근법이나 이자비용 등의 부대비용 접근 방식 등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실정에 적합한 자가주거비 반영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할 시기입니다. 최근 급등하는 주택가격만 봐도 그 필요성은 결코 적지 않아 보입니다. 물가지수만 믿지 마시고, 현금 가치를 지킬 방법이 무엇인지 잘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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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 경제일간지 기자
필명은 제 성격이 까칠하다며 취재원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기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별명같아 필명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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