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가치는 대체로 시간이 갈수록 낮아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이 가진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이죠. 물론 더 이상 생산이 안되는 경우 중고 가격이 신제품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겠죠.
우리나라에는 아파트가 이런 예외에 해당됩니다.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는 이미 지어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싸게 팔립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3.3㎡ 당 전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050만 원입니다. 같은 기간 평균 분양가격은 1290만 원. 새 아파트가 760만 원이나 더 싼 셈입니다.
새 아파트 가격 통제해온 정부
이는 정부가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로 신규 분양 아파트 가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말 그대로 분양가의 최대치를 정해놓는 제도입니다. 고분양가 관리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택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분양보증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사업자가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미분양이 발생하면 보증을 제공한 HUG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HUG가 손실예방을 내세워 분양가를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는 적용 대상과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목적은 분양가가 지나치게 오르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9월에 돌연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를 손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분양가 관리제는 이미 지난달 말에 개편 방안까지 내놓았습니다. 분양가격 산정에 활용하는 인근 시세와 비교사업장 선정 기준을 고친 겁니다. 기존 분양가상한제에서는 분양가가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로 결정되는데 가산비 부분이 조만간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고분양가 심사규정 개선방향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시장에서는 이번 개편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분양가격 인상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분양가격 상승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분양가 통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민간주택업계에서는 정부의 입장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갑자기 분양가격 제도를 손보는 이유
집값의 하락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정부가 갑자기 분양가를 올릴 수 있는 정책을 꺼낸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집값이 고점을 넘어 하늘로 치솟고 있는 지금에 말이죠.
숫자를 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분양가격 통제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부터입니다. 정부는 작년 7월 29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부활시켰습니다. 그전에 공공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공공분양 규모가 많지 않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민간택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서울은 도시화율이 높아 그린벨트를 풀지 않고서는 새로 집을 지을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미 주택이 있던 곳을 재개발 또는 재건축해 신규 아파트가 공급됩니다. 대부분 민간이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죠.
시장은 곧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서울 대부분 지역이 분양가상한제 지역으로 묶이면서 주택 분양이 급감했습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직후인 지난해 8월과 9월의 서울 주택분양 수는 각각 430가구와 165가구에 그쳤습니다. 10월에도 237가구에 머물렀습니다. 정부가 분양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낮추라고 하니 민간사업자들이 분양시장에서 철수한 겁니다.
문제는 이때가 주택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KB부동산 기준으로 2019년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5951만 원으로 1년 전(8억 1595만 원)보다 4356만 원 올랐습니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해 12월에는 10억 4299만 원으로 올라 1년새 1억 8348만 원이나 껑충 뜁니다. 지난해 6∼7월부터 패닉바잉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주택 매수세가 형성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새 아파트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던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정책 처방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넘치는 데 새 아파트는 없는 상황. 당연히 기존 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가게 되고,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올해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분양가상한제 자체가 잘못된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분양가를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두면 집값을 오히려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논리도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문제는 타이밍이죠.
불과 2년전인 2019년만 해도 집값이 내려갈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가 있었나 싶겠지만, 2019년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1439만 원이었는데 같은 해 4월에는 8억 1131억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지금이야 집값은 무조건 오르는 것이 공식처럼 됐지만 당시에는 하락장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조이지 말고 오히려 풀어 새 아파트가 더 많이 나오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정부가 지금 꽉 조였던 분양가격을 풀려는 이유도 결국은 민간에서 주택 분양이 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최근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을 아파트 수준으로 공급하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다만,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접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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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가치는 대체로 시간이 갈수록 낮아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이 가진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이죠. 물론 더 이상 생산이 안되는 경우 중고 가격이 신제품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겠죠.
우리나라에는 아파트가 이런 예외에 해당됩니다.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는 이미 지어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싸게 팔립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3.3㎡ 당 전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050만 원입니다. 같은 기간 평균 분양가격은 1290만 원. 새 아파트가 760만 원이나 더 싼 셈입니다.
새 아파트 가격 통제해온 정부
이는 정부가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로 신규 분양 아파트 가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말 그대로 분양가의 최대치를 정해놓는 제도입니다. 고분양가 관리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택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분양보증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사업자가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미분양이 발생하면 보증을 제공한 HUG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HUG가 손실예방을 내세워 분양가를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는 적용 대상과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목적은 분양가가 지나치게 오르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9월에 돌연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 관리제를 손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분양가 관리제는 이미 지난달 말에 개편 방안까지 내놓았습니다. 분양가격 산정에 활용하는 인근 시세와 비교사업장 선정 기준을 고친 겁니다. 기존 분양가상한제에서는 분양가가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로 결정되는데 가산비 부분이 조만간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고분양가 심사규정 개선방향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시장에서는 이번 개편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분양가격 인상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분양가격 상승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분양가 통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민간주택업계에서는 정부의 입장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갑자기 분양가격 제도를 손보는 이유
집값의 하락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정부가 갑자기 분양가를 올릴 수 있는 정책을 꺼낸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집값이 고점을 넘어 하늘로 치솟고 있는 지금에 말이죠.
숫자를 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분양가격 통제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부터입니다. 정부는 작년 7월 29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부활시켰습니다. 그전에 공공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공공분양 규모가 많지 않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민간택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서울은 도시화율이 높아 그린벨트를 풀지 않고서는 새로 집을 지을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미 주택이 있던 곳을 재개발 또는 재건축해 신규 아파트가 공급됩니다. 대부분 민간이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죠.
시장은 곧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서울 대부분 지역이 분양가상한제 지역으로 묶이면서 주택 분양이 급감했습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직후인 지난해 8월과 9월의 서울 주택분양 수는 각각 430가구와 165가구에 그쳤습니다. 10월에도 237가구에 머물렀습니다. 정부가 분양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낮추라고 하니 민간사업자들이 분양시장에서 철수한 겁니다.
문제는 이때가 주택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KB부동산 기준으로 2019년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5951만 원으로 1년 전(8억 1595만 원)보다 4356만 원 올랐습니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해 12월에는 10억 4299만 원으로 올라 1년새 1억 8348만 원이나 껑충 뜁니다. 지난해 6∼7월부터 패닉바잉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주택 매수세가 형성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새 아파트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던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정책 처방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넘치는 데 새 아파트는 없는 상황. 당연히 기존 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가게 되고,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올해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분양가상한제 자체가 잘못된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분양가를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두면 집값을 오히려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논리도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문제는 타이밍이죠.
불과 2년전인 2019년만 해도 집값이 내려갈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가 있었나 싶겠지만, 2019년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 1439만 원이었는데 같은 해 4월에는 8억 1131억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지금이야 집값은 무조건 오르는 것이 공식처럼 됐지만 당시에는 하락장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조이지 말고 오히려 풀어 새 아파트가 더 많이 나오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정부가 지금 꽉 조였던 분양가격을 풀려는 이유도 결국은 민간에서 주택 분양이 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최근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을 아파트 수준으로 공급하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다만,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접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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